고조선의 8조법에서는 살인, 상해, 절도에 관한 죄의 조항 뒤에 부인은 정실하여 음란하지 않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를 통해 소실되어 알려지지 않은 나머지 5개의 조항 중에서
간통에 대해 처벌하는 내용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백제에서는
간통을 한 여성은 남편의 노비가 되었다. 즉, 간통한 여성은 남편의 집에 영속적으로 귀속되어 평생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다. 형벌의 본질이 피해자의 손해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되었고, 생명 박탈보다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 환수와 노역 징수를 우선시되었기에 사형 대신 노비가 되는 형벌이 실행된 것이다. 이를 통해 백제에서는 아내의 간통을 남편의 배타적 소유권 손상이라는 재산에 관한 범죄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남성은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고 상간남에 대한 처벌 조항은 확인되지 않았다.
부여는
간통에 대해 매우 엄격한 나라였다. 부부 관계가 성립된 이후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성적인 관계를 맺을 경우 국가에서 직접 처형했으며, 이에 따라 간통은 중범죄로 간주되었다.
신라에서는 기혼 여성의
간통은 가정과 국가의 질서를 위협하는 엄중한 범죄로 간주되었다. 신분과 상관 없이 간통이 적발된다면 일반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를 통해 신라에서는 성적 일탈이 정치적 모반과 직결되는 사회적 위협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소지 마립간이 통치하던 시기에 궁주와 한 승려가 밀통하고 소지 마립간을 시해하는 것을 모의하다가 소지 마립간이 신이한 계시로 거문고 갑을 활로 쏘아 숨은 궁주와 승려를 적발했고, 두 사람은 처형되었다.